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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tles all the way down 출처:아마존


2021년 목표 중에 하나로 책을 좀 읽어볼까 했었다. 다만 책을 올해 10권 읽어야 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출근 길 지하철역에서 10분을 읽겠다는 목표였다. 출근길이기 때문에 영업일 기준이다. 그래서 주말이나 연휴, 휴가 중에는 책을 안 읽더라도 괜찮다.

그 외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며 유튜브를 보던 중 초보자가 읽기 좋은 원서 책(https://www.youtube.com/watch?v=0a34l9uKLuQ&t=609s)으로 이 책이 있었고 검색해보니 손쉽게(?) 하지만 불법이 아닌 경로로 epub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처음 몇 줄 읽고 덮은 후 다른 책을 읽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초보에게 추천했지만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여 주인공은 스스로가 어떤 병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는 강박증이 있다 보니 이 병에 관한 부분에 대한 단어, 그리고 강박에 관한 단어들은 알 수 없었다. 현재도 c. diff 라고만 말고 다시 병명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계속 읽은 이유는 내 목표가 소소했기 때문이다. 아마 한 달에 한 권 읽기였으면, 혹은 이 책을 추천했던 유튜버처럼 하루에 한 챕터 혹은 두 챕터였다면 다른 책으로 갈아 탔을 테지만 출근길 지하철에서 환승역부터 도착역까지 10분 정도 책 읽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루에 얼마나 읽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막연히 올해 안에는 다 읽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것이 11월 정도 였고 석 달에서 넉 달 정도 걸려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무엇보다도 뿌듯하다. 원래 목표였던 출근길 책 읽기라는 것을 넉 달 정도 잘 지켜온 뿌듯함과 그것이 원서라는 뿌듯함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뿌듯함이 있다. 책을 중반 정도 읽어 갈 때 까지도 도대체 Turtles all the way down 은 무슨 뜻인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 아는 단어인데 모여서 모르는 문장이 되었다. 또한 이건 어떤 소설인가에 대한 갈피도 못 잡았다. 추리소설? 연애소설? 호러? 왜냐하면 주인공은 강박증이다. 종종 또 다른 자신과 대화하면 싸운다. “너 오늘 아침 손가락에 밴드 새걸로 바꿨니?” “그만해.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아니야. 지금 확인해봐야 해. 너 그러다 감염될꺼야.” “닥쳐” “지금 화장실로 가서 확인해 보는게 어때?” “아침에 새걸로 바꿨을거야.” “확신해?” “내가 안 했을리 없어?” 하지만 결국 Aza는 손에 있는 밴드를 보고 살짝 보이는 선홍색은 감염의 증거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화장실로 가 손을 씻고 세정제를 바르고 말리고 새로운 밴드를 붙이는 동작을 반복하게 된다. 어느 날 Aza는 단짝친구인 Daisy와 Pickett 저택에 잠입하게 된다. Pickett은 인디아나폴리스에서 여러가지 사업을 따 냈지만 제대로 건설하지 않은 건설업자인 피켓은 그렇게 돈을 축적했지만 결국 횡령등의 혐의로 수배 명령이 내려졌고 그 날 피켓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붙은 현상금을 얻으려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증거를 찾기 위해 잠입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예전에 잠깐 알고 지낸 피켓의 아들 Davis 를 만난다. 좀 더 정확히는 잠입해 있던 걸 걸려서 임기 응변으로 Davis를 만나러 왔다고 한 거긴 하지만.

그러니까 여기서 Davis와잘 되면 연애소설, 같이 아버지를 찾기 위한 증거를 모으면 추리소설, Aza의 강박에 의해 뭔가 일이 벌어졌을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었다.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들의 심리같은 것들을 현하는 이야기였다.

내 영어 실력 때문에 모르는 단어가 많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문장이 짧아서 난해한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오히려 사전 찾아보면서 읽는 것이 마치 암호 풀이 같았다. 또한 주인공의 반복적인 행동은 반복된 구절로 되풀이 되었고 덕분에 처음에 끙끙 대며 찾아본 부분들이 후에 반복되기도 했다.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나고 아주 흥미진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지루하지도 않았다. Aza와 Davis사이의 관계, 그리고 Aza의 심리묘사 등은 책을 읽으면서 계속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즈음엔 출근길이 아니었음에도 굳이 원서를 꺼내들고(지만 옆에서 보면 핸드폰을 들고) 책을 읽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 책은 epub 파일을 다운 받아 아이폰 “도서” 앱을 통해 봤다. 이 앱에선 책 읽기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는데 나는 10분으로 해 두었었다. 그리고 출근길에 책을 읽다 보면 “오늘 목표를 달성했다” 라는 알림을 받게 된다. 이 알림에도 중독성이 있다보니 계속 책을 읽게 만드는 자극이 된 것 같다.

Turtles all the way down은 개발자에겐 재귀적 용법, Recursive 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 아래에는 거북이가 있다. 그 거북이 아래에는? 그 거북이 아래에도 거북이가 있다. 그 아래에는? 그 아래에도 거북이가 있다. 그 아래에는 항상 거북이가 있다.



한 해 목표를 순조롭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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