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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처음엔 좀 집중을 못했다. 주인공 집 옆에 있는 부 래들리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를 내가 제대로 이해 못 한 부분도 있거니와 어린 두 주인공의 시점으로 대단히 스잔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스릴러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검색을 좀 한 뒤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고 법정에 들어서는 장면 부터는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역전재판”게임이 생각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나는 이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식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끈기있게 대답해 줄 수 있을까? 질문을 폄하하지 않고 올바른 시각을 가지도록 안내할 수 있을까? 이미 내가 색안경을 끼고 모두가 파랗게 보이는 세상이라면 내 자식들에게도 세상은 파랗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 다음 톰 로빈슨은 왜 감옥에서 탈옥 하려 했을까. 정말 탈옥을 하려 했던걸까. 아니면 이미 희망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죄가 확정되기 전에 스스로 죽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일단 탈옥을 정말 시도한건 아닐테고 분명 죽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왜 죽으려고 했을까.

며칠 생각한 후의 결론은 내가 현 시대에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살기 때문에 톰 로빈슨의 입장이 되어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책이 주는 의미도 그런 것이겠지만. 분명 현재에 대한민국에서도 차별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피부로 느끼긴 어렵다. 나는 피부색이 남다르지 않고 외형적으로 봤을 때 어딘가 특별한 부분도 없고 딱히 눈에 띄는 외모적인 부분도 없다. TV에 나왔듯이 내가 파란 눈이었거나, 몸이 어딘가 불편하다면 조금 더 몰입했을 수도 있다. 혹은 현재 코로나로 인종차별이 한창인 유럽에 내가 지금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아주 예전에 봤던 Gloomy Sunday영화가 생각났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그 영화. 톰 브라운의 죽음은 Gloomy Sunday에서 나왔던 죽음들과 한편으로 선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책 펴면서는 사실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마무리도 깔끔했다. 스피릿이 아서(부 래들리)의 집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

 

앵무새 죽이기는 원래 “앵무새”가 아니라 Mockingbird라고 하는 흉내지빠귀(??)라고 하는 새라 한다. 이 새는 딱히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앵무새 죽이기는 딱히 해를 끼치지 않는, 무죄인 새를 죽이기였다.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스카웃이 아빠에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했을 때 아빠의 답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마침내 오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네 나이 때는 말이야.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 있다면, 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까? 그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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